HEAVENKISSING

# Miro:藍

"맛층!"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녀가 들어왔다. 전투적인 하이힐 굽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화가 많이 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짐이 많은 그녀는 문이 열리자마자 무섭게 집주인에게 자신의 핸드백과 서류가방을 던지듯 맡겼고, 장신의 남자는 살짝 휘청거리면서도 익숙한 듯 전부 받아들었다. 

 

"그래도 야근은 안했네."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에도 짜증을 내며 그녀는 트렌치코트를 벗어 소파에 내동댕이친다. 이놈의 회사, 당장 없애버릴거야! 보통은 이 경우에는 때려친다고 표현하지 않던가? 마츠카와 잇세이는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었다. 조조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천하 사람들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리게 하진 않겠다. 바로 지금 이 구절이 생각나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맛층, 피자에 맥주 먹자!"

"나, 소세지가 많이 올라간 게 좋은데."

"넌 왜 포테이토 피자의 진가를 몰라주는 거야!"

 

솔직히 처음부터 그의 취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어쩌면 한참 전에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늘 이런 식이다. 오늘도 예고 없는 방문으로, 언제가 되었든 그녀는 즉흥적으로 쳐들어왔고 마츠카와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직접 차에 피자와 맥주를 잔뜩 실어온 그녀는 낮은 매트리스 위에 앉아 스카프를 풀었고 맛층은 숙련된 솜씨로 작은 테이블에 음식들을 놓았다. 거실이 따로 있는 집은 아니었다. 오래되었지만 세들어 사는 사람의 손길로 그럭저럭 심플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진, 거실 겸 안방 겸 응접실 겸, 그리고 부엌까지 가능한 다재다능한 공간이었다. 그녀가 직접 사준 티비의 전원을 켰다. 

 

"넷플릭스?"

"그래!"

 

아직도 화가 남았는지 묶은 머리를 거칠게 풀면서 세상 만사 나쁜 놈들을 일러바친다. 옆 팀의 무슨 과장놈, 우리 팀의 어쩌고 부장놈과 대리놈, 내 차 수리를 제대로 안해준 정비사, 나에게 몰상식한 식당 주인, 출장 회의시간에 나를 면박준 무슨 지역의 지사 본부장, 그래도 사랑스러운 연봉, 이직제안을 받아서 면접을 갈까 고민했던 이야기, 그러나 금요일을 월요일보다 못한 요일로 만들어버린 오늘의 매출성과보고 회의의 격렬한 전투. 그 모든 걸 그녀는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모든 이야기를 종합했을 때...그녀의 잘못은 결코 없는 일들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너, 넌 원고인지 뭔지 잘 쓰고 있어?"

"뭐. 그냥 그렇지."

 

맞다, 냄비 태우고 있었네 아차 싶은 정도의 얼굴로 그녀가 맛층을 보았다. 활동적이고, 감정의 색채가 선명하고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남아돌아서 쓰고 또 써야 하는 그녀와는 달리 마츠카와는 상당한 무채색이었다. 그녀는 그의 글을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가끔 묘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행히 있어서인지, 그는 느리지만 꾸준히 글을 써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는 하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그녀가 자신의 색깔을 다 빼앗아간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없는 로봇인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스스로 감정을 표현할 때보다, 그녀가 울고 웃고 화를 내는 걸 보고 있는 것이 더 큰 충족감을 주고는 했다. 비록 겉보기에 크게 차이는 없지만,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즐겁고, 신경이 쓰이며...

 

[When I buy a new book I always read the last page first...]

"...And in the mean time you're gonna ruin your whole life waiting for it."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 마츠카와는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번이고 봤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그와 여러 번, 혼자서 몇 십번은 보았을 그 로맨스 영화의 대사를 정확한 엑센트와 발음으로 따라하며 몰입하는 그녀의 옆 얼굴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일주일 내내 열의를 대해 일을 했을 터인데도 눈동자가 새롭게 타오른다. 대학 시절 처음 영화동아리에서 만났을 때도 딱 이런 모습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는 변한 게 없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마츠카와는 자신의 마음을 말한 적이 없었다.

 

"피자 안 먹어?"

"...흘렸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그녀가 마츠카와를 쳐다보면 마치 꼭 자기처럼 영화를 보고 있다. 기분 탓인가? 하지만 이쪽은 보지도 않고 지적하는 모습이 얄밉다. 배가 많이 고플터라 성급하게 피자 한 조각을 물다가 피자치즈가 그녀의 흰 블라우스 위로 흐른 모양이었다. 바로 싫은 소리로 짜증을 낸다. 벌떡 일어난 마츠카와는 찬물을 묻힌 손수건을 가져와, 서슴없이 그 위를 닦아주었다. 그녀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맥주 캔 하나를 더 깠다.

 

"갑갑하지 않아? 스타킹."

 

남자의 무심한 목소리에 여자는 대꾸 없이 양 발을 앞으로 쭉 펼 뿐이었다. 마츠카와는 손톱에 스타킹이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손가락을 뻗는다. 타이트한 검은 스커트 아래 있던 건 밴드스타킹이었다. 미끈한 맨다리가 나오고, 하루 종일 지쳤을 발, 그러나 늘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발톱들이 마츠카와의 눈에 들어왔다. 핥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어디까지나 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엉망진창이 된 생머리에, 밤이 되어서 번진 화장을 아직도 하고, 답답한지 단추는 반은 풀고 있는 살짝 젖은 블라우스와 약간 보이는 브래지어 레이스, 그리고 맨발. 

 

[Can't a man say a woman is attractive without it being a come-on? Alright, alright, let's just say just...]

 

영화모임에서 마츠카와는 사실 거의 영화를 보지 못했다.

 

"진짜, 볼 때마다 감명깊고 너무 재밌다니까. 그치?"

"응, 나도 매번 재밌네."

 

그는 언제나 따로 집에 가서 영화를 다시 보고는 했지만, 어른거리는 다른 모습 때문에 사실 서너번은 다시 틀어서 봐야 겨우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아, 너무, 취한 거 같아."

"자고 갈 거지?"

"2시가 넘었는데 쫓아내려고."

"그런 건 아니고..."

"죽겠다, 맥주 좀 더 줘."

 

아직 뜯지 않은 맥주캔에 마츠카와는 손을 뻗었다가, 다시 그대로 내렸다. 어느새 그녀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술을 삐쭉 내렸다가, 그녀가 마시다 남긴 맥주 캔이 가까이에 있어 주저없이 들었다. 빨간 립스틱 자국이 묻어있는 부분은 곧 마츠카와의 입술과 닿는다. 그녀가 기대기 편하게 자세를 고친다. 곧 거의 안기듯이 편안한 자세로 깊이 잠들었다. 마츠카와는 새근새근 잠든 그녀를 반쯤 품에 안고, 영화의 나머지 부분을 하나하나 천천히 따라가며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I love that you..."

 

I love that you get cold when it's seventy one degrees out, 

I love that it takes you an hour and a half to order a sandwich,

I love that you get a little crinkle above your nose when you're looking at me like I'm nuts, 

I love that after I spend a day with you I can still smell your perfume on my clothes 

and I love that you are the last person I want to talk to before I go to sleep at night.  

밖이 21도인데 춥다는 당신을,

샌드위치 주문에도 한 시간이나 걸리는 당신을,

나를 볼 때 미친놈 보듯이 인상을 쓰는 당신을, 

헤어진 후 내 옷에 배어있는 향수의 주인인 당신을,

잠들기 전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당신을 사랑해.

 

And it's not because I'm lonely, and it's not because it's New Years Eve.  

I came here tonight because when you realise you want to spend the rest of your life with somebody, 

you want the rest of the life to start as soon as possible.

외로워서도, 연말이라서도 이러는 게 아니야. 

당신이 누군가와 남은 인생을 같이 보낼거라면 빠를수록 좋을 거 같아서 여기 온 거야.

 

이 긴 대사만큼은, 마츠카와는 충분히 잘 외우고 있었다. 언제나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