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KISSING

# Miro:藍

[-한 잔 해. 마시면서 이야기하자.]

 

뻔질나게 술 마시러 다니다 보면 아무리 시끄러운 고깃집이라도 각 테이블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임을 알 수 있다. 회사에 한이 맺혀서 잔뜩 토로하러 나온 저 직장인 테이블은 아마도 새벽까지 자리를 바꿔가며 고주망태가 될 것이다. 일부러 주인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어제 본 맛집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며 이 집 고기에 대해 칼바람 휘날리는 비평을 하는 못된 심보의 테이블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모여 친목을 도모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살펴보게 되는, 묘한 서열 경쟁이 있는 마술 소모임 회원들의 테이블까지 술자리의 모습은 각각 달랐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티가 나는 분위기의 테이블은, 한 쌍의 사람이 앉아 있지만 익어가는 고기에는 관심 없이 조용히 술만 각자 따라 마시거나, 팔짱을 끼고 서로를 노려보다 못해 외면하는 테이블이다. 아마도 대부분, 결혼했거나 사귀는 사이이리라. 계산할 때 쯤에는 '이혼이 예정되어 있는' 이나 '헤어짐이 확정된' 사이로 바뀌겠지만.

 

그런 걸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벌을 받은 걸까? 지금 나는 숨도 못 쉬고 있다. 쇠젓가락을 들자니 젓가락이 부딪히면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날 거 같아 고기 한 점, 밥 한 술 입에 안 들어간다.

 

[우리 이러는 거 너무 지겹지 않아?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

[넌 왜 그렇게 집착을 해?]

[집착? 그럼 내가 이 정도 말도 못하면, 그게 무슨 사이야.]

 

한 테이블 너머 등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가슴을 퍽퍽 때린다. 답답한 마음에 조심스레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가슴이 시원해지진 못할 망정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게 영 마음이 불안하다. 그러면서도 화도 난다. 나에겐 그렇게 매몰차게 굴더니. 나에겐 이런 집착 하나 안 해줘서 왜 나를 병신 만들었나.

 

"고기 좀 먹어라."

"쉿, 조용히 좀 해."

 

왜? 어디 아파? 내 친구는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살다 보면 마음이 아파서 고기가 안 넘어가는 법도 있다는 걸 좀 이해해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나랑 같은 날에 이별했다고, 내가 펑펑 울고 있을 때 나에게 전화를 줬지만 그 순간에도 라면에 살치살을 구워 같이 먹고 있다던 놈이긴 했다.

 

"야, 저 테이블 헤어지나 봐. 얼굴 좀 봐."

"새끼야, 제발 닥쳐."

"쟤들 헤어질 거 같아? 너 그런 거 잘 맞추더라."

"맞춘 게 아니라……."

 

내가 봤을 땐 어? 120% 헤어지는 거 같았는데 마지막에 반전 있었지, 완전 해피엔딩. 다시 말하지만 나는 맞춘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만든 거였다. 그 사람들을 다시 잘 되게 만들었다. 이 내가 말이지.

 

나는 남들에게 없는, 대충 혀말기 정도 중요도를 가진 능력이 있었다. 담배를 피다 보니 옆에서 싸우고 있길래, 한참 헤어진 후의 내가 혼잣말로 잘 좀 사귀어보라고 지껄였더니 맥락도 계기도 없이 하하호호 내가 잘못했어 아니야 자기야 내가 더 사랑해. 우연이다 싶었던 이런 일이 반복되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기분에 따라 다시 뜨겁게 사랑도 시켜보고, 다시는 못 만나게 이별도 시켜보았다. 그때는 나도 신기해서 이걸 작은 보상이고 여흥이라고 생각했지. 잔인하게 차인 내 인생에 주는 약간의 동전 한 닢.

 

하지만 이게 나와 별 관계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전에 사귀던 사람은―]

"주문하신 공기밥이요."

"……."

"김치도 가져다 드릴게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직원이 옆에서 밑반찬을 챙겨주며 알짱댄다. 미치겠다. 나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렇게 떠나기 전에 붙잡고, 떠난 다음에도 구질구질하게 연락하고 매달렸는데도 아직도 미련이 남았다. 틀림없이 '너 스토커야?' 하고 놀라면서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그 화 내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진짜 끝내자는 거야?]

[안될 게 뭐 있어, 너 이러는 거 나는ㅡ]

 

이별하게 둘까?

 

[다시 잘 해보자, 우리.]

[…….]

 

아마도 우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에 나도 무언가 치밀어올랐다. 나한테나 그래주지, 한번만 그래줬으면 나는 너만 생각하며 살았을 텐데. 나는 네가 얄밉고 속상해서 분해 죽겠다. 속시원하게 둘이 잘 되라고 말하며 네 행복을 바라기엔 내가 너무 마음이 좁은데도 입이 안 떨어진다.

 

[안될까?]

[무릎꿇고 빌어보기라도 하던가.]

 

참 너무한 새끼가 아닐 수 없는데, 내 전 애인은 그 앞에서 미련하게 바보처럼 이걸 참고만 있다. 나한테는 그렇게 매몰차게 대했으면서 이렇게 당하다니 정말 쌤통이지. 너도 그때의 내 마음을 좀 알아야 한다. 그러면 아마 너는, 그때의 나처럼, 너무 비참하고 끔찍한 그 마음을, 네가 절절히 깨달으면 그땐 아마도.

 

"…헤어져."

 

헤어져버려라. 당장 헤어져라. 지금 헤어지고 네가 나와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내가 너에게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찌질하게 구는지, 집착하고 미련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후회하는지, 매일 너 때문에 화가 나고 울다가 웃었다가 그래도 보고 싶어서 담배를 피웠다가 술을 마셨다가 얼마나 오래 흐린 눈으로 누워서 천장만 보았는지 네가 꼭 좀 알았으면 좋겠다. 알아줬으면ㅡ

 

"야 이 씹새끼를 봤나!"

"아악!"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놀라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면, 아마도 상대인 듯한 재수없는 면상의 사람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깃기름이 있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를 생고기로 때리고, 고기집게로 찌르고, 어디서 본 것처럼 김치로 뺨을 때리면서 멱살을 잡고 있는 건 놀랍게도 음식을 나르던 바로 그 점원이었다.

 

"제대로 헤어지겠다더니, 정리한다더니 뭐가 어째? 무릎을 꿇고 뭐? 너 진짜 나쁜 놈이구나? 양다리로는 모자라? 나랑 먼저 헤어지자, 나쁜 놈아!"

"와, 대박. 이거 뭐냐."

 

양다리? 바람? 혼자서 고기 추가주문까지 시키던 친구까지 재밌다는 얼굴로 그 난장판을 구경하고, 나는 얼이 빠져서 그 광경을 보고만 있던터라 나의 너가 나를 알아본 것마저 몰랐다. 나도 마늘 접시로 너에게 이마를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너 뭐야, 스토커야?"

"너, 너 저 사람이랑 사귀는 거 아니야?"

"ㅡ나도 아까까지는 그런 줄 알았어!"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소리치는 모습에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고깃집 사장이 달려와서 점원과 손님을 떼어놓았는데, 점원은 울면서도 젓가락 더미와 청양고추를 던지면서 하소연했다. 이 나쁜 새끼야, 나 좋달 땐 언제고, 실컷 바람나서 놀더니, 걸려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정리하면 되겠냐면서, 나 보는 앞에서 정리하라고 일부러 여기서 만나라고 했더니, 네가 진짜 인간이냐, 운운.

 

"…그러니까, 내가 이별시킨 게, 너랑 저 사람이 아니라……."

"아, 난 왜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인간뿐이지?"

 

내 말은 관심도 없고 너는 분연히 일어나 공기밥 그릇으로 그놈을 때리다가 그 그릇도 던지고 스테인리스 쟁반으로 놈의 머리를 내려쳤다. 때릴 때마다 오래되고 둔탁한 꽹과리 소리가 난다.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서 너는 때리고 그놈은 맞기만 한다. 세상에, 맞는 놈은 맞을 짓을 해서 이런 망신살을 겪고 있는데 이상하게 이게 부러웠다.

 

"야, 너ㅡ"

"바쁘니까 넌 꺼져!"

 

바람을 핀 자식은 경찰을 부른다고 난리법석이고, 너와 점원은 어느새 같은 편이 되어서 둘이서 손을 꼭 잡고 할 테면 해보라고 더욱 윽박을 질렀다. 나는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여기엔 내 자리가 없었다. 

 

"울어?"

 

내 친구는 내 손을 잡아 끌어서 다시 원래의 테이블 자리에 앉혔다. 타들어가는 고기의 연기가 너무 많이 나고 있었고, 눈이 맵고 코가 찡했다. 이게 내가 앉아야 할 자리인가? 다 타버린 양념갈비 몇 점에 식어빠진 된장찌개와 텅빈 계란찜 뚝배기가 있는 테이블이?

 

"안 울어……."

"너 엄청 우네."

"아니라고. 저기요, 불판 좀, 갈아주세요."

 

사건의 주인공들은 나쁜 놈의 멱살을 잡고 유유히 떠나버렸고, 고깃집 사장은 점원 한 명을 해고했으며, 내 친구는 물냉면 하나와 소주 두 병을 시켰다. 나는 훌쩍거리며 밥공기에 달라붙은 밥풀들을 긁어 먹었다. 나는 나의 일을 내 맘대로 할 수가 없고 내 마음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이번엔 이렇게까지 만났는데도 심지어 너와 제대로 대화해보지도 못했다. 제발 부탁인데, 나 좀 알아주라. 응? 

 

하지만 이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타인이 내 마음을 알아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는 사이였어?"

"눈치는 밥 말아먹었지. 입 좀 다물어라 제발."

"냉면 왔다, 냉면이나 먹어."

"내가 이게 넘어가겠니?"

"사랑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야."

 

결국 난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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