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KISSING

# Miro:藍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대체로 그맘때 다들 한번씩 잠수를 배우고는 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잘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멋쩍지만 그 중의 한명이 나다. 깊게 들어가는 일이 힘들지 않았고, 수경을 쓰지 않아도 볼 수 있었고, 산소통을 메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은 칭찬을 받는 일이 기뻐서 더욱 열심히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잠수는 웅덩이에서 하는 일이다. 웅덩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그 모양과 깊이는 천차만별이었다.  큰 저택 하나 크기로 크고 넓은 것도 있고, 이것도 웅덩이인가 싶을 정도로 그저 물이 괴어 있는 곳도 있다. 좋고 나쁨은 없었다. 나는 대체로 우물처럼 좁고 깊은 것을 좋아했지만 앝은 곳에서 즐겁게 발만 담그고 물장구를 치다 나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즐거운 일이었다. 나는 나의 능력을 자랑했고 그걸 만끽했다. 물 속으로 들어가면 천천히 내가 변하면서, 온 피부로 호흡하게 된다. 아마도 반쯤은 물과 뒤섞여서 흡수되었을 텐데, 그것도 잠수하는 동안에는 잘 모르고 나오고 나서야 그랬었구나 하고 천천히 감각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일수록, 오감이 열려 있을 수록, 그리고 괜찮다 싶은 웅덩이일수록 몸이 완전히 변해서 잠수를 지속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완전한 좋고 나쁨은 없다. 결함 없이 온전한 잠수를 하고 돌아와서 어른들에게 말하면, 나와 '잘 맞는 웅덩이'를 만난 거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웅덩이마다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또 달랐다. 대체로는 처음 잠수를 하게 되면 땅 위의 것이 일렁이며 반사되는 것을 물 속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한 거울은 아니다. 사실은 물 밖의 풍경보다 환상적인 모습이 천지였다. (처음 잠수를 배울 때는 흥미를 느끼도록 그런 웅덩이를 추천받고는 한다.) 신기하여 고개를 돌려보며 점점 더 깊이 잠수하다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었고, 가슴이 모닥불의 불티처럼 타닥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었다. 눈이 맑아지고 내가 더 가벼워져서 등에 날개가 돋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잠수를 하고 있으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나는 웅덩이 안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건 말로 다시 설명하기 힘든 기쁨과 환희였다.

 

즐겁다. 흡족하다. 신기하다, 신비롭다, 재미있다 흥미가 생겼고 신이 났다 벅차오르고 흥이 오르다 마음을 졸이다가 다시 탁 트이면서 나는 산산히 가루가 되어 반짝이는 것이 되어 떠다니다가 다시 하나로 몽글몽글 행복하게 합쳐져 웅덩이보다 더 큰 것이 되어서 내가 되고 싶은 나보다 더욱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이 되어 다시 유쾌해지는데,

 

"웅덩이는 항상 맑아야 하나요?"

 

선생님은 아주 오래 고민하다가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새로운 웅덩이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이들이 주로 가는 곳이었다. 잠수를 하기 전 바깥에서 들여다보면, 탁하고 흐릿한 물이 찰랑거렸다. 얼마나 깊을지도 전혀 알 수 가 없다. 아주 살짝 겁이 났고, 아주 많이 궁금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여느때보다 더 멀리서부터 달려서 풍덩 뛰어들었다.

 

그 웅덩이에서 나는 아주 많은 슬픔을 느꼈다. 그것은 전에 없던 것이었는데도, 내가 잘 모르면서 내 속에서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웅덩이는 내 안의 슬픈 마음을 전부 꺼내갔다가 더욱 크게 만들어서 다시 내 안으로 박아넣었다. 나 자신보다 더 커진 슬픔에 전혀 저항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 너무 고통스러워진 나는 잠수를 끝내고 나오기까지가 아주 오래 걸렸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슬픔이 비통을 불렀다. 비통해하는 마음이 멈출 수 없는 아픔을 계속해서 우러나오게 하다가, 지쳐서 죽어버리는 거 아닐까 무서워질때는 잠잠하여 나직한 비감을 남기면서 천천히 잦아들었다. 이끼처럼 비애가 천천히 쌓이면 그건 그리움으로 나를 사무치게 만들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했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늪으로 나를 불러서 진흙으로 내 팔다리를 덮은 후 천천히 썩어가게 하다가, 전부 없어져서 이제 끝났나 싶을 때 다시금 새로운 슬픔을 불러와 내 척수를 세우고 다시 그 중심을 푹 찔러 도망가지 못하게 하여 아마도 이제 진짜로 영원히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거라는 낙담이 내 입으로 계속해서, 숨도 쉬지 못하도록 부어 넣어지면 눈을 떠도 사방이 깜깜한데 그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만이 뚝, 뚝 흘러나와서

 

나는 계속해서 웅덩이에 잠수하게 되었다. 깊게 잠수하는 일은 미성년의 일으로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는 말은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따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와 함께 즐겁게 잠수하던 친구들이 점차 적어져도, 어느새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주 외로운 감각만이 내 절친한 친구가 되어 내 손의 깍지를 잡고 함께 걸을 때도 계속해서 웅덩이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그러다가 이제는 들어가기 전부터 눈물이 나왔다. 더는 이 웅덩이를 감당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발을 들어 그대로 빠진다. 역시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낡아진 것인지 예전만큼 한없이 깊게 들어가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다 나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나는 잠수를 그만두고 싶다. 그렇게 웅덩이로 가는 발을 끊은, 줄, 알았지만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너무 힘들어."

"그만해도 돼."

 

그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나도 힘들었어. 그래서 이번엔 웅덩이를 파는 사람이 되기로 했지."
"그러면 넌 잠수를 그만둔 거야?"
"아니."

왜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내가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그 역시 멈출 수 없었으리라. 그의 앞에서 계속해서 울고 또 울었던 나는 이제 땅 위에 누추하게 꿇어앉아 비루한 손가락을 펴서 천천히 흙을 파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것 사이로 왈칵 물이 솟아오르다 꼬르륵 꺼진다. 웅덩이를 파는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맨손으로 파는 것. 그의 손에 이미 손톱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걸 왜 지금에서야 알았을까? 나를 보고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진흙 덩어리가 닿는 손 끝에 약간의 빛나는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마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건 그보다 더 많은 회의감 때문일 것이다. 모순된 말인데도 그렇다. 이 웅덩이가 괜찮은 웅덩이인지 아닌지를 전혀 확신할 수 없었고 괴롭기만 했기 때문에 나는 꾸준히 계속 팔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는 아주 많은 웅덩이가 있다. 나의 맨 손가락으로 조금씩 파낸 웅덩이는 나를 먹고 자라난다. 잠수는 웅덩이에서 하는 일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나는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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