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KISSING

# Miro:藍

처음으로 눈을 뜨면 온통 어두웠고 잿빛의 천장이 흐릿하게 보였다. 딱딱하게 굳은 몸을 일으켰다. 짚고 일어나는 손바닥에는 바닥에 아무렇게 널려 있던 콘크리트 조각들이 따끔하게 붙었다. 천천히 무릎을 굽혀 일어나면 내가 툭 찬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가 울렸고 그것이 멈추면 곧 잠잠히 조용해졌다.

 

창문마다 '임대 문의' 인쇄물이 붙어 있는 빈 상가의 사무실에서 나는 작은 바나나로 태어났다. 타박타박 시멘트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시간은 아마도 늦은 오후, 구름이 많은 날이었다. 도로에는 버려진 광고지 따위가 바람에 날려 굴러다녔다. 공중 휴지통은 반쯤 차있거나 이미 넘쳐있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달팽이 한 마리도 없는 거리. 문을 연 가게도 없었다. 전부 불이 꺼져 있었고, 자물쇠로 유리문을 꽁꽁 걸어 잠근 곳이 많았다. 간혹 그저 문을 반쯤 열어두고 방치한 곳도 있었다.

 

우리는 바나나의 씨를 찾았다. 그건 흔히 없다고 여겨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지만 사실은 존재하는 것이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대출 광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에어컨 환풍기 수십대가 양쪽 건물 벽에 따개비처럼 붙어 있었다. 더욱 좁은 골목에서는 나는 몸을 물렁하게 만들어 겨우 빠져나왔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공기는 급박하게 얼어붙듯 차가워진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었다. 메마른 가로수 곁에 앉았다. 방향을 맞춰보고 눈대중을 해서 지구라고 짐작되는 빛나는 점 하나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나는 나의 배를 죽 갈라 헤집었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 속살 일부를 주먹으로 움켜쥐어 꺼냈다. 일부는 다시 먹었다. 나머지는 가로수의 흙바닥을 파서 얕게 심었다. 내가 심은 것은 바나나의 씨가 맞을까. 그러니 여기서 싹이 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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